'동파육'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5/03 소동파와 동파육 (44)

중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유난히 좋아해서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한 요리 방법이 28종류가 있고, 여기서 나온 음식의 가짓수는 무려 1천 5백여 종류에 이른다고 한다.

 이중 '동파육(東坡肉)'은 껍질이 붙은 돼지고기삼겹살을 삶아 눌렀다가 긴 네모꼴로 잘라서 대파· 간장· 설탕· 팔각 등을 함께 넣고 노릇노릇하게 조린 중국의 대중적인 찜요리 중 하나이다. 맛을 돋구려고 소흥주(紹興酒)로 향기를 내고 고기가 은근히 익도록 약한 불로 오랜 시간 조리기 때문에 고기 속까지 젓가락이 쑥 들어갈 정도로 아주 부드러워서 치아가 약한 노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껍질은 쫄깃하고 고기는 연하며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음식이다. 금방이라도 흐트러질 것 같은 고기를 쪽파로 예쁘게 묶어서 내오는데, 부드러운 살코기가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가면 입안에 쪽파의 향기만 은은하게 남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파육은 홍소(紅燒)요리의 최고봉이다. '홍소'란 고기에 기름과 설탕을 넣어서 볶은후 간장을 넣고 오래 익혀서 검붉은 색이 나도록 하는 중국의 요리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통 중화요리집에 가면 쉽게 맛볼 수 있는 동파육은 송(宋)나라 최고의 시인이었던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6∼1101)이 만든 비법요리라고 한다. 이백(李白)· 두보(杜甫) 등과 함께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아버지 순(洵) 및 아우 철(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리우는 소식은 시 뿐만 아니라 술을 즐기고 서화에도 뛰어난 문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날렸고, 또 요리의 달인이자 대단한 미식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2세 때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그는 한때 왕안석(王安石)이 주도하는 개혁파의 신법(新法) 실시에 격렬히 대항하다가 필화사건을 일으켜 백 일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심한 취조를 당한 뒤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44세였다.

 그곳에서 6년간 가난하고 우울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그는 동쪽[東] 언덕[坡]에 있는 황무지를 일구어 '동파(東坡)'라 호를 짓고 스스로를 '동파거사(東坡居士)'라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일컫는 '소동파'라는 애칭은 이래서 생겨났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자연을 즐겼던 그는 유배지에서도 틈만 나면 나귀를 타고 주위의 명승을 찾아 유람했다. 한번은 달 밝은 밤에 적벽이란 곳을 찾아가 뱃놀이를 했다. 불후의 명작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그의 대표작「적벽부(赤壁賦)」라는 시가 여기서 나왔다.

 적벽이라면 본디 삼국시대에 손권의 오(吳)와 유비의 촉(蜀)이 연합하여 조조의 백만대군을 격파했던 곳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소동파가 찾은 곳은 삼국시대의 격전지였던 적벽이 아니라, 황주땅의 적벽이었다. 그러나 그곳도 이름이 적벽인지라 당시 격전의 주역들을 자신의 처지에 비겨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고, 결국은 저들이나 자신이나 무한한 생명 앞에서는 모두 덧없는 존재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시름을 잊는다는 내용의 시를 썼던 것이다.

 유배지 황주에서는 돼지고기 값이 무척 싸서 그는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고, 곧 돼지고기를 이용한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했다. 이것이 팔등신 미인이 많고 풍광수려한 땅으로 알려진 절강성 항주(杭州)의 명물요리인 '동파육'의 유래다. 이 이야기를 기록한 송나라 주자지(周紫芝)가 쓴 《동파시화(東坡詩話)》라는 책에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먹고 나서 장난삼아 지었다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黃州의 맛좋은 돼지고기/ 값은 진흙처럼 싸지만/ 부자는 거들떠 보지 않고

 가난한 이는 어찌 요리할 줄 모르네/ 적은 물에 돼지고기를 넣고 / 약한 불로 충분히 삶으니

 그 맛 비길 데 없어/ 아침마다 배불리 먹네/ 그 누가 어찌 이 맛 알리오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하게 되어 외롭고 가난하지만 간사한 무리가 맛볼 수 없는 황주의 돼지고기를 즐기면서 자위(自慰)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동파육이 호북성 황주가 아니라 절강성 항주의 명물요리로 알려지게 된 것은 소동파가 후일 철종이 즉위하면서 구법파(舊法派)가 득세하자 서울로 돌아왔고, 항주 태수로 부임하여 잡초가 우거져 폐허가 된 서호(西湖)를 대대적으로 준설하고 보를 쌓았다. 이에 감격한 백성들이 보내온 돼지고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술과 양념을 넣어 이 요리를 만들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정성껏 대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밖에 동파금각(-金脚)· 동파사자두(-獅子頭)· 동파수구(-繡球)· 동파완자(-丸子) 등도 모두 소동파가 개발한 돼지고기 요리다. 소동파는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들은 속물이 되고, 돼지고기가 없으면 몸이 마른다. 속물이 되지않고 마르지도 않으려면 끼니마다 돼지볶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남길 만큼 뛰어난 돼지고기 예찬론자였다.  

 이 '동파육'이나 탕수육(糖水肉)이라는 음식 이름처럼 중화요리에서 '肉'이라는 글자가 나오는 것은 모두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중화요리는 중국에 사는 수많은 종족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이 먹는 요리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종교적 게율이나 생활습관 대문에 돼지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전혀 먹지 않는 민족도 있다. 이런 민족의 요리에는 양고기나 소고기가 주로 쓰이는데, 그럴 때의 음식 이름은 고양육(*羊肉: 양고기 구이)나 총포우육(蔥爆牛肉)처럼 어떤 짐승고기를 썼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