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인권 변호사에서 민생 복지 전문가로
장애를 극복하고 사시 합격, 삶의 지향은 차별과 소외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저는 이번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지역구(관악을) 후보가 되고자 공천 신청을 한 이성재입니다. 변호사로서 법무법인 덕수의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아마비 후유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우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주어진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가난하고 장애를 가진 젊은이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졸업 무렵부터 수많은 직장에 이력서를 냈지만 받아주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생존을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 하였습니다. 그 결과 1984년에 합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시합격의 의미를 이 땅에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라는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제 삶의 지향을 온전히 차별과 소외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두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987년 변호사를 시작한 직후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연구하고, 차별적 관행에 맞서기 위하여 한신대 김성재 교수님등과 함께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및 장애인고용촉진법안을 만들었고, 저는 당시 13대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끝내 두 법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 뒤 1994년에 인권에 관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University of Washington, law school에 입학하여 LL.M과정을 밟으며 한편으로는 인권관계 법률을 공부하던 중 1996년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영입제안을 받고 귀국하여 15대 국회의원(전국구)이 되었습니다.
15데 국회의원 시절, 기초생활보장법과 국민건강보험법 제정을 주도
15대 국회의원 시기, 저는 보건복지상임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아동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법령을 실질적인 복지가 이루어 지는 방향으로 개정하는데에 앞장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적 보건의료정책 분야의 시민사회 단체들 및 전공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제도 개선에 앞장서왔습니다. 특히 IMF사태가 벌어진 뒤, 극단적 소득 양극화 현상을 보이던 당시, 사회복지제도의 기초이며 근간이 되는 기초생활보장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의 제정을 주도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여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진보적 발전에 기여한 점은 저의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민사회단체와 한국유권자연합 등의 의정활동평가에서 저는 4년동안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국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엄청난 뿌듯함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좋은 영역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15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갈 무렵, 한번 더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시민사회단체들과 각계 어른들의 지원 속에 지역구 출마를 결심하고 석달에 걸쳐 출마지역에 사무실을 차리고 16대 선거를 준비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공천환경은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공천기준이 되지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의정활동을 잘 한 것은 인정이 되는데 장애인이기 때문에 지역선거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공천을 탈락시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시 변호사로 돌아가 일을 하던 중 마사회 감사 2년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뒤 민주당 노무현후보의 대선과정에서 중앙선대위 상황실장을 맡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2003년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직을 맏게 되었습니다. 민생의 핵심적 영역인 건강과 질병의 분야에서 우리사회의 복지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호기였습니다.
우선은 공기관 노사 갈등의 상징이던 만명이 넘는 직원들을 교육을 통하여 한명한명 손을 잡고, 한국의 보건제도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자는 호소를 하였고, 덕분에 임기를 마칠때 까지 투쟁적 노사관계를 협력적 노사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약 3%를 제외한 97%의 국민이 법적으로 가입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제도입니다. 저는 지난한 노력으로 임명 당시 2조 4천억원에 달하던 건강보험 재정을 적자를 1조원이 넘는 흑자재정으로 유도하였고 이 재정으로 암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보장성 강화를 현실화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덕분에 이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겨우 50% 수준의 보장성이 3년 사이에 60%대를 넘기도록하였습니다(현재는 64%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건강보험수가를 정하는 방식도 의료계를 설득하여, 의료수가 인상과 건강보험의 보장성 향상을 함께 합의하는 공식적 합의서를 도출하는 등의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역사상 처음으로 의료계와 의료수가 합의를 도출해 내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의 한 모습으로서 건강보험공단과 의료계가 함께 이룩한 큰 성과였습니다.
한국사회 양극화 극복 대안 마련 위해, 복지국가소사이어티라는 연구단체 설립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퇴임 후,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사회를 지켜보면서 대안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사회가 위험하겠다는 생각에서 최병모변호사님과 제가 공동대표를 맡아 오랜 동지들과 함께 (사단법인)복지국가소사이어티라는 연구단체를 만들었습니다.
6개월의 연구를 통하여 ‘복지국가혁명(이성재 편저)’이라는 400쪽에 이르는 단행본을 출판하였습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오늘의 현실속에서 양극화를 방지하고 교육제도부터 시작하여, 아동, 여성, 비정규직문제와 국민연금제도 등 사회제도의 개혁방향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이를 위한 경제정의를 실천 대안까지 제시하는 연구의 성과물이었습니다.
이번 대선과정에서는 정책연구재단인 한반도전략연구원의 정책담당 부원장을 맡아 정책공약을 개발하는 한편 시민사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각종 토론회에 참여하여 이명박식 무한경쟁의 사회로는 안 되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복지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점을 역설하는 등 당원으로서의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정치를 재개하여 복지국가의 꿈을 향한 대장정에 나서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일부 기업들만이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지향할 것입니다. 무한 경쟁만이 실용이고 정의인 것으로 생각하는 정치철학이 지배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민과 중산층 국민을 위해서라도 야당의 역할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이제는 기업을 하기 좋은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는 경제가 정의로워져야 하고 전 국민이 삶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보편적 복지체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의 철학과 경험을 이번 18대 국회에서 살려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지역구 국회의원에 도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많은 분들이 저의 휠체어를 뒤에서 묵묵히 밀어줄 것이므로 힘겨운 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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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언제나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냥 꿈이아닌 꿈너머 꿈을 꼭 이루시길 응원 합니다.
변호사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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